첫 순수 전기차는 키가 껑충 람보르기니 CEO 스테펜 윙켈만
첫 순수 전기차는 키가 껑충 람보르기니 CEO 스테펜 윙켈만
지난 11월 29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람보르기니 CEO 스테펜 윙켈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람보르기니 데이 재팬 2024’와 테메라리오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 공개 행사 참석을 위해 일본을 찾았다.
이날 한국과 대만 기자단은 윙켈만과 CEO로서 장수 비결과 람보르기니의 전동화 전략, 첫 순수 전기차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2015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의 카탈루냐 서킷을 찾았다. 아벤타도르 SV 시승회 무대였다.
피트 한쪽에 깡마른 남성이 홀로 서 있었다. 람보르기니 CEO 스테펜 윙켈만(Stephan Winkelmann)이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텄다. 첫 질문은 의외로 진실논란 뜨거운 람보르기니의 탄생비화. “엔초 페라리 때문에 열 받아서 차린 회사 맞나요?”
그가 빙긋 웃으며 말한다. “맞습니다.” 그 한 마디로, 의구심은 사라졌다. 그는 격의 없고 진지했다.
2014년까지 23년 동안 철통 카리스마로 페라리 이끌던 루카 디 몬터제몰로와 정반대였다.
지난 11월 29일, 그를 다시 만났다. 2021년 도쿄올림픽 개막 및 폐막식을 개최한 도쿄 국립경기장에서다. 이날 치를 ‘람보르기니 데이 재팬 2024’의 무대였다.
람보르기니 양적·질적 성장 이끈 주역
세월의 흔적일까? 10년 가까운 사이, 그는 흰머리가 꽤 늘었고 다소 지쳐 보였다.
스테펜 윙켈만은 1964년 구동독의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독일 국적이지만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찍이 이탈리아 로마로 옮겨 성장했다.
이후 사피엔차 대학(University of Sapienza)과 뮌헨 대학에서 정치학으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3년 뮌헨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영업 담당으로 일했다.
이후 1994~2004년 피아트와 알파로메오, 란치아, 피아트 프로페셔널에 몸담았다.
2004년 그는 독일에서 피아트 오토모빌 AG의 CEO로 취임했다. 최고경영자 경력의 시작이었다.
2005년 1월, 스테펜 윙켈만은 폭스바겐 그룹에 합류해 아우토모빌리 람보르기니의 사장 겸 CEO를 맡았다.
당시 람보르기니는 무르시엘라고와 가야르도를 연간 1,600대 정도 팔았다.
윙켈만 취임 이후 람보르기니는 양적 성장에 가속을 붙였다. 2016년 람보르기니는 아벤타도르와 우라칸을 총 3,457대를 팔았다.
2005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그해 윙켈만은 아우디 콰트로(현 아우디 스포츠) CEO로 자리를 옮겼다. 2017년부터는 부가티 회장도 맡았다.
2020년 12월 1일, 그는 람보르기니의 수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부가티 회장도 겸직한다.
드림카 브랜드 두 개를 이끄는 그야말로 ‘미스터 수퍼카’다. 아울러 벌써 수장 역할만 20년째다.
장수 비결이 궁금했다. “올바른 팀을 구성하고 스스로와 회사에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에요.
지금까지 성과가 내일도 유효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죠.”
람보르니기 복귀 이후 윙켈만은 새로운 별명도 얻었다. 바로 ‘B2B 인플루언서’다.
그는 링크드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계기가 궁금했다. “몇 년 전부터 시작했어요.
저는 SNS 전문가가 아니어서 팀과 함께 운영 중이죠.
SNS 중엔 오직 링크드인만 운영하는데, 우리 직업적 특성과 잘 맞기 때문이죠. 대신 전통 미디어 채널에서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에요.”
한국 기자단 중 한 명이 “링크드인 팔로우 요청하면 받아주겠냐”고 물었다.
윙켈만은 “가끔 요청을 확인하지만 자주 보지는 못한다. 일일이 챙기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한 까닭이다.
하지만 특별히 말씀해 준다면 수락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날 인터뷰는 한국 이외에도 대만 기자단과 함께 했다. 나머지 기자들과 나눈 질의응답을 이어서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