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 전쟁 2라운드
주도권 전쟁 2라운드
전기차의 가격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기에는 크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격 경쟁이 가능해진 이유는 당연히 리튬을 비롯한 원자재의 가격 인하다.
배터리 가격이 예상만큼 인하되기는 커녕 오히려 가격 인상의 요인이 되었던 것이 전기차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여기에 더하여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전기차에게 차량용 반도체의 수급
사정이 다소 개선된 것도 원가의 비정상적 상승을 멈추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즉, 원가의 하락, 아니 정확하게는 원가의 정상화가 차량의 비정상적 가격 인상을 끝낼 수 있는 실질적 여유를 주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기차의 높은 가격이 전기차 대중화의 실질적 걸림돌이 되었다는 뜻이다.
얼리어답터 성격이 강한 고관여 고객층은 이제 거의 전기차를 구매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진정한 시장 원리에 따라 전기차가 시장을 확대해야 하는 것이다.
고관여 고객들은 가격이 구매 의향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작다.
즉,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작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저관여 고객층은 아무래도 가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가격이 적당하지 않으면 시장은 본격적으로 확대될 수 없다.
그런데 자동차 제작사들은 시장이 자연스럽게 확대될 때를 느긋하게 기다릴 수가 없다.
그동안 쏟아부어 온 막대한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으면 여러가지 측면에서 위험할 수 있다.
(그 속사정은 매우 다양하므로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자.) 또한 탄소세 혹은 배출가스 총량제
등의 친환경 법령에 따라 이산화탄소와 배출가스의 총량 혹은 대당 배출량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그 자체는 차량 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한 국가 단위에서도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커다란
국가 경쟁력의 위협 요소가 된다. 따라서 전기차는 어쨌든 더 많이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형 전기 트럭들부터 가격 인하 경쟁이 시작되었다. 앞서 말했던 원가 정상화에 의한
가격 인하 가능성을 활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대두된 것이 바로 LFP 배터리이다.
이전에는 가격 경쟁력은 있었지만 에너지 밀도나 낮은 온도에서의 취약점 등으로 중국의 저가 모델들에만 사용되었던 LFP 배터리였다.
하지만 BYD의 블레이드 배터리와 셀 투 팩 패키징 기술 등으로 에너지 밀도의 단점을 보완하고
컨디셔닝 기술로 저온 성능을 어느 정도 보완하자 이제는 가격 경쟁력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리고 전기차의 대중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LFP 배터리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제는 전 세계의 다양한 모델들이 주도권 전쟁 LFP 배터리를 채용하고 있다.
지난 달 뮌헨에서 열린 IAA 모딜리티 쇼는 중국 자동차의 대거 진출이 큰 화재였다.
내수 시장에서는 전기차 보조금이 사라졌고 미-중 갈등으로 북미 시장으로 진출할 길이
막힌 중국 전기차는 남아있는 유일한 전기차 거대 시장인 유럽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은 당연히 우수한 가격 경쟁력으로 유럽 시장을 공략한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은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제대로 된 제품을 구입하는 고관여 고객들이
많은 시장이므로 중국 전기차의 포트폴리오를 상향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즉, 유럽은 중극 전기차의 현실적 시장이자 미래를 위한 훈련장으로도 안성맞춤인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
원래 IAA는 완성차 모터쇼이기도 하지만 부품 산업의 거대한 거래 현장이어왔다.
실제로 프레스 데이가 하루인 반면 바이어들을 위한 트레이드 데이가 이틀일 정도.
그 배경에는 독일의 강력한 자동차 부품 산업이 자리잡고 있다.
로버트 보쉬, 콘티넨탈, ZF등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거인들이 모두 독일 기업들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부품과 모듈을 바탕으로 하는 모듈형 플랫폼이 독일 자동차 제작사들로부터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IAA는 이전보다도 더 많은 중국 부품 업체들의 진출이 눈길을 끌었다.
마치 미국 CES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중국 완성차들이 자랑하는 배터리 및 소프트웨어 기술 등이 모두 부품 업체들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반대로 독일의 티어 1 부품 메이저들은 변신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로버트 보쉬의 라이다 개발 포기 및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로의 주력 전환 발표였다.
이 부분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하다.
왜냐 하면 부품 업체이지만 실제로는 커스텀 반도체 특허의 공룡인 로버트 보쉬가 미래 자율
주행의 핵심 센서 가운데 하나인 라이다의 개발을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시그널이기 때문이다.